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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람)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영원한 팝의 황제

by 소소한 일상. 202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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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그의 인생

 어떠한 수식어보다 팝의 황제라는 말이 어울리는 마이클 잭슨은 1958년에 태어나 2009년 6월 25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0세에 그 많은 업적을 남겨두고 우리곁에서 멀어졌습니다.

 

 팝 음악의 역사는 마이클 잭슨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뉘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중음악에서 가장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년시절부터 아버지의 고된 교육을 받으며 가수로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번째 시작은 잭슨 파이브로 보이 밴드 메인 보컬이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커리어는 시작되었고 많은 이들이 20세기 대중문화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합니다. 사회적 문제인 인종차별을 음악을 통해 완화 시킨 문화 예술의 선구자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흑인이 미국 음악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고 이로 인해 많은 흑인 가수들이 가수의 길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락, 락앤롤이나 포크송등에서 대중음악의 주 장르를 팝으로 변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기네스 북에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연예인으로 등재되기도 했으며 그는 팝 음악 아티스트이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한 사회 운동가로서의 면모도 있습니다. Heal the World, We are the World, Black or White 등 음악으로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는 수많은 국가에서 그와 비슷학게 음악으로 평화를 외치는 운동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의 앨범 Thriller는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었고 199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중문화의 세계화에 처음 등장한 서구 문화의 상징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콘서트를 열며 지속적으로 팬들과 함께한 그는 2009년 6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진정한 황제라고 칭해지는 이유들

 김태훈 음악평론가에 따르면 1970년대 디스코 음악에 수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대표했던 밴드는 비지스라고 하는 백인 3인조 형제 밴드였습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 영화에서도 흑인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백인들끼리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시대에도 흑인 스타 가수들이 있었음에도 백이 흑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음을 시대가 보여주었습니다. 흑백의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했던 미국 사회에서 백인들이어야만 폭넓은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이 등장하는 1980년대, 그는 흑백 상관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게 되며 시대를 가르는 혁명적인 등장이 됩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또한 이야기 합니다. MJ(마이클 잭슨)이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 같은 슈퍼스타가 있었지만 그들은 주로 백인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반면 MJ는 흑백 사회 모두에서 폭발적 반응을 이끌었고 '흑백 크로스오버 시대'를 이끌었다고 평을 받습니다. 레이찰스, 샘 쿡,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등 MJ 이전에도 흑인 스타들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들은 앞서 얘기한 앨비스 프레슬리, 존 레논, 폴 매카트니등 백인 가수들을 누르고 진정한 1등을 차지했다고 보진 못합니다. 명백히 백이 흑의 위에 있었다고 봅니다. 흑인 가수로서 백인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1등에 오른 인물은 MJ밖에 없습니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대중음악의 헤게모니가 백인에서 흑인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82년이 대중음악의 전환점이란 말이 그래서 나오게 됩니다.

 MJ는 귀로만 드는 음악을 듣고 만족하는 시대를 넘어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평가받습니다. 뮤직비디오와 댄스의 대중화와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Thriller 음악 뮤직비디오는 미국 의회도서관에 보관 중인 유일한 뮤직 비디오이자 MTV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직 비디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뮤직비디오 이후 음반 산업에서 뮤직비디오의 중요성이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또한 사운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도 유행을 선도했습니다. 그는 음악을 거의 모두 손수 작업했는데, 사운드에 유난히 민감하고 엄격한 귀를 가졌기로 유명합니다. 당시 스튜디오 엔지니어들 책상에는 항상 마이클잭슨의 앨범이 있을 정도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음향과 녹음에 대해 공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댄스음악 가수가 아닌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겸비한 완벽한 가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

 레이디 가가는 MJ가 입었던 옷이나 장신구들을 대량으로 구매해 MJ 박물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그의 팬입니다. MJ 사망소식이 전해지던날은 백댄서들과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

 

 셀린디온, 비욘세 등은 자신의 아이돌이었다고 했으며 MJ의 노래를 커버하기도 하며 어린 시절부터 방에 그의 포스터를 붙여놓았다고도 합니다.

 

 그외 어셔, 마돈나, 그린데이, 브루노 마스등 수많은 가수들이 MJ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으며 그의 사망이후 각 가수들은 각자의 콘서트나 무대에서 MJ의 의상을 입고 오마쥬하며 그를 추모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남긴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에 미친 파급력은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오직 황제이기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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